"어, 나 괜찮아."
이 말을 한 적이 있나요. 실제로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한 적.
서운하긴 한데 서운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습니다.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아서. 내가 예민한 것처럼 보일까봐. 말해봤자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서.
그래서 삼켰어요.
삼키는 게 늘 나쁜 건 아니에요. 그 자리에선 그게 최선이었을 수도 있죠. 다만 삼킨 감정도 어딘가에는 쌓인다는 걸 알아두면, 나중에 "내가 왜 이렇게 예민하지" 하고 자기를 탓하는 일이 줄어들어요.
근데 삼킨 서운함은 사라지지 않아요. 어딘가에 조용히 있습니다. 가끔 비슷한 상황이 오면 다시 올라오고요. "또 이러네"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 때문이에요.
우걱이 처리 결과
이 감정은 파쇄 완료되었지만 잔여물이 남습니다. 말하지 못한 서운함은 완전히 갈리지 않아요. 말해야 처리가 됩니다. 말 못 했다면, 다른 방식으로 꺼내야 해요.
이 글을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. 내가 그때 서운했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인정하는 것.
서운함을 말할지 정하는 기준
망설여질 때는 이렇게 나눠보세요. 한 번 말하면 풀릴 일인지, 말해도 매번 반복되는 관계인지. 한 번의 오해라면 "그때 사실 나 좀 서운했어"라고 가볍게 꺼내는 게 쌓아두는 것보다 나아요. 대부분의 서운함은 막상 말해보면 의외로 별일 아니었던 경우가 많거든요. 반대로 말해도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, 그건 서운함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거리를 다시 볼 때라는 신호일 수 있어요. 말할지 말지를 정하는 기준은 "이 말로 뭔가 달라질 수 있나"예요.
말 못 한 서운함, 혼자 처리하는 법
끝내 말하지 못했다면, 마음속에만 두지 말고 한 번 밖으로 꺼내주세요. "나는 그때 ○○가 서운했다"라고 딱 한 문장으로 적어보는 거예요. 누구에게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. 신기하게도,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인정해주는 것만으로 그 무게가 줄어들어요. 서운함이 오래 남는 건 '내가 틀려서'가 아니라 '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'일 때가 많으니까요. 적어도 나만큼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거예요.
오늘 남은 퇴비
괜찮다고 말한 서운함.
이건 아직 덜 썩었습니다. 발효 중입니다.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다른 형태가 될 겁니다. 아마 이해로. 또는 거리두기로. 아니면 용기 내서 말하기로.
마지막 한 줄
괜찮지 않아도 됩니다. 그걸 말해도 됩니다. 아직 타이밍이 아니라면, 여기에 두고 가세요.